사람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초심을 잃어버리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생각, 즉 기본으로 돌아가 자신을 채찍질 하려는 다짐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티스트에게도 이런 덕목은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을 하며 조금씩 느슨해지는 음악적 감각,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의 열정적 마음가짐은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크리스티나 아귈레라(Christina Aguilera)의 [Back To Basics] 앨범은 음악의 기본에서 바라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앨범이었다. 알리샤 키스(Alicia Keys)는 피아노 앞에 처음 앉았던 설렘을 늘 상기하며 무대에 임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위대한 아티스트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도 구두를 닦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잊지 못했다. 이처럼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초심’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어쿠스틱도 ‘초심’에서 바라보면 좋을 것 같다. 수없이 많은 악기들이 존재하고, 음악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뛰어난 기계가 범람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자극적인 사운드에 잠깐 고개를 돌아보는 일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어쿠스틱은 기계가 만드는 소리도 아니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소리도 아니다. 최소화된 연주와 악기, 그리고 편곡으로 음악 본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작업이다. 어쩌면 잊혀져가고 있는 음악이 주는 감흥을 살리기 위한 해법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티스트’ 박기영의 어쿠스틱 앨범도 이러한 방향에서 나온 가장 잔잔한 결과물이다.
신곡 3곡과 기존 히트곡들은 편곡해 수록하며 제목도 [Acoustic + Best] 라고 지었다. 앨범의 가장 큰 강점은 박기영이 어떻게 아름다운 보이스를 내는 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락 음악을 하며 다져진 탄탄한 성량과 시원한 가창력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이긴 하지만,
어쿠스틱에서는 약간 힘을 빼고 자연스런 가창력을 선보인다. 숨소리까지 빼지 않고 말이다. 사실 우리가 앨범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정제된 사운드이다. 물론 어쿠스틱이라고 소리를 정제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박기영의 어쿠스틱 앨범에는 인간적인 향수가 넘친다. 초심에 가까운 질감, 그리고 녹음 할 때 그녀가 냈던 소리가 모두 담겨있는 사운드는 리스너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게다가 강렬한 락 음악에서는 쉽게 느끼기 힘들었던 보이스의 매력을 앨범을 듣는 내내 찾아볼 수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그대 나를 보나요’, ‘그대 때문에’, ‘마지막 사랑’ 등에서 들을 수 있는 호소력 짙은 보이스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세월이 가며 그녀도 나이를 먹고, 그녀가 발표했던 곡들도 나이를 먹었지만,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피어나는 새로운 매력이 있다.
TV에서 가끔보는 고즈넉한 시골밥상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향기처럼, 오감을 자극하지 않고도 조용히 가슴을 파고든다.
프로듀서의 역량이 화려하게 된 앨범은 아니다. 미국 팝 씬은 뒤흔드는 티페인(T-Pain)의 음악처럼 전자음이 넘실거리는 앨범도 아니다.
하지만 박기영의 어쿠스틱 앨범에는 신선한 울림이 있다. 오랜만에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수작이다. 제이슨 므라즈(Jason Mraz)가 보여준 음악적 자유를 박기영도 구현해 낸다. 음악적 고민, 그리고 경험, 시간이 헛되지 않은 앨범이 나왔다. 박기영은 진정한 아티스트다.
글/팝컬럼리스트 노준영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