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팝 역사의 한 페이지는 화려한 가창력을 지닌 디바들이 수놓았다. 음악이 주는 최고의 감흥을 맘껏 펼쳐 보이며 대중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떨림을 선사했던 그녀들을 보며 팝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이도 많았다.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것도 디바 열풍을 거세게 만드는 데 한 몫을 담당했다. 건강한 섹시미와 엄청난 가창력은 각자 가지고 있었던 독특한 매력 포인트와 어울려 무시무시한 아우라를 발산했다.
하지만 세월이 가면 강산도 변하는 법, 전성기를 구가한 두 아티스트는 약속이라도 한 듯 내리막을 걸었다. 특히 휘트니 휴스턴은 오랜 시간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약물에 빠져 앙상해진 그녀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머라이어 캐리가 재기에 성공하자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갔다. 각종 루머와 추측들이 난무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2005년 ‘마이더스의 손’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입에서 그녀의 컴백 소식이 흘러나왔다. 팬들은 휘트니 휴스턴의 신화를 쓴 장본인이 직접 밝힌 컴백 뉴스에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빨리 그녀의 앨범을 손에 쥘 수는 없었고, 기다림은 계속 이어졌다. 고생 끝에 얻은 열매가 더 달콤한 법, 새 앨범 [I Look To You] 와의 첫 만남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쓰라린 기억으로 남은 2002년 작 [Just Whitney] 와 이번 앨범은 방향부터 다르다. [Just Whitney'는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앨범이었다.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시도가 지나쳐 휘트니가 가진 고유의 매력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I Look To You] 는 초심으로 돌아간 거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첫 싱글로 커트된 ‘I Look To You' 는 반가움과 탄성이 동시에 터진다. 휘트니가 전성기 시절 보여줬던 보컬의 바삭함이 그대로 살아있고, 유려한 멜로디를 이끌어 나가는 카리스마는 팬들이 기대했던 모습의 결정판이다. 알리샤 키스(Alicia Keys)가 선사한 ’Million Dollar Bill' 도 좋다. 가볍고 슬림하며 신선한 내음이 한껏 느껴진다. R&B 힙합 사운드를 기반으로 젊은 층에게 어필할 만한 사운드를 만들어 냈지만, 트렌드에 매몰되지 않았다. 새 앨범을 만들어 내기 위해 충분히 방향성을 고민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Call You Tonight', 'A Song For You', 'I Didn't Know My Own Strength' 는 듣는 이를 아련한 추억상자로 인도할 것이다. 그야말로 휘트니 휴스턴만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R&B 팝 넘버라 여유로운 미소도 함께 한다. 휘트니 휴스턴이 최고의 디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창력도 뛰어났지만, 노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감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A Song For You' 와 ‘I Didn't Know My Own Strength' 는 감성에 연륜까지 더한 구수하고 진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에이콘(Akon)과 함께 'Like I Never Left’ 는 앨범에서 가장 색다른 트랙이다. 트렌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아티스트를 초대한 것 자체가 최근의 흐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겠지만, 곡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살아낸 휘트니 휴스턴의 보컬은 그 어떤 것과 만나도 묻히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가진 힘이다.
‘Greatest Love Of All’ 과 ‘I Will Always Love You’ 를 추억했던 기다림이 이제 끝났다. 휘트니 휴스턴은 팬들 곁으로 돌아왔고, 그녀가 늘 선사해 주던 음악 본연의 감흥도 놓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트렌드’ 라는 이름 앞에 선택의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사람이 주던 감동은 기계가 대신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거장은 수줍은 몸짓으로 과거지향적인 가치들을 내민다. ‘사람’ 이 먼저 떠오르는 따뜻한 음악을 한 가득 안고 말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미 만렙을 찍은 디바의 고백은 너무나도 향기롭다.
글/음악평론가 노준영
사진/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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