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패기는 무모함을 담보할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남들이 무모하다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는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여기 인디 밴드로 많은 인기를 모았던 건장한 청년들이 있다. 그들의 옛 이름은 ‘815밴드’ 였다. 냅다 내달리는 음악은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았고,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능력은 단연 돋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815밴드는 기나긴 휴식에 들어갔다. 기획사와의 계약이 끝나면서 잠깐 쉬려 했던 것이라는데, 휴식이 너무 길었던 나머지 멤버들은 각자 다른 일을 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부분 멋지게 자리를 잡았고, 멤버 중 한명인 디지는 쇼핑몰업계에서 꽤나 잘 나가는 CEO로 성장하며 승승장구했다. 아쉬울 것 없는 생활이었을 텐데 왜 이 청년들은 갑자기 래빗보이(Rabbit Boy)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앨범 작업을 하게 된 것일까? 해답은 디지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어느 날 거래처를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중환자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고 한다.
‘이렇게 쉽게 죽을 줄 알았으면 음악이라도 하다가 죽을걸!’
하늘은 디지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했고, 결국 그렇게 그리워했던 뮤직 비즈니스로 돌아왔다. ‘815밴드’ 를 함께 했던 모든 멤버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뭉쳤다. 이번 앨범에 가장 큰 모토는 바로 ‘토끼’ 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허둥지둥 뛰어가는 토끼를 보고 뒤쫓아 가다가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게 된다. 영화 [매트릭스] 도 마찬가지다. 극중 네오는 트리니티에게 ‘흰 토끼를 따라가라’ 는 메시지를 전달받고 토끼 문신을 한 여자를 따라간다. 멤버들은 ‘래빗보이’ 로 이름을 바꾸며 문화코드에서 보이는 토끼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리스너들에게 색다른 음악의 향연을 통해 ‘이상한 나라’ 를 선사하겠다는 이들의 의지가 그룹명에 그대로 녹아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책 없는 흥겨움을 선사했던 815밴드 시절의 매력을 래빗보이는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일렉트로니카를 기본으로 파티 음악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화끈한 한 방을 선사한다. ‘비비디바비디부’ 부터 시작해 'Dance Dance Dance', 'Goodbye Goodboy', 'KO', 'That's All Right' 까지 광란은 끝이 없다. 희망의 메시지를 팡팡 전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바람처럼 파티를 위한 음악들은 지친 사람들의 어깨에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뭉쳤지만 무모한 열정 하나만큼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관심과 무관심의 애매한 경계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래빗보이에게 광적인 열정은 분명 큰 자산임에 틀림이 없다.
음악으로 아름다운 무모함을 실험하려는 그들의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음악 하나만으로 어깨를 흔들게 만드는 센스, 래빗보이는 마음이 훈훈해 지는 밴드다. 하늘이 주신 두 번째 기회에 대중들이 반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음악평론가 노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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